주칭란(朱慶瀾)은 1922년 말 주화호로총사령으로 재직 중 대한혁명단(大韓革命團)의 움직임을 일본 측에 비밀로 하여 일본군의 군사 개입을 저지시켰다. 1931년 9월 일제가 만주(滿洲)를 침략하자 독립군 단체들과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며 독립운동에 기여하였다. 1932년 4월 상하이(上海) 홍구공원(虹口公園)에서 윤봉길(尹奉吉) 의사가 의거를 일으킨 뒤에는 김구의 피신을 돕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재정을 지원했다. 윤봉길 의거 직후 중국 조야의 환대는 현저하였다. 금전의 지원도 적지 않았다. 쑹메이링(宋美齢)이 10 만원, 중국 19로군에서 1만원 등을 한국독립운동 자금으로 내 놓았다. 주칭란 역시 중국진재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1만원의 지원금을 보냈다. 윤봉길 의거 직후 위험에 노출된 김구 등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의 피신을 직접 도왔다. 특히 김구가 이곳저곳으로 피신할 당시 추푸청(褚輔成)과 함께 원조금을 모아 전달하였다. 1932년 동북의용군(東北義勇軍) 후원회 간부를 역임할 당시에는 의열단(義烈團)의 김원봉(金元鳳)과 교섭하여 군자금 모집을 돕기도 했다. 1933년 9월에는 북평항일구국위원회(北平抗日救國委員會) 위원장으로서 중국공산당 만주지부(滿洲支部)와 조선공산당원을 상호 제휴시키고 일만(日滿) 군대의 기밀사항 정찰을 명령하기도 했다. 정부는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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