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쟈화(朱家驊)는 1940년 초 김구와 협력하여 한국광복군의 정식 성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한국광복군은 창설 직후 중국 군사위원회의 인준 없이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중국 국민당 정부에는 한국광복군의 군사 조직 개편과 징모분처(徵募分處) 설치 등 제반 활동에 제약을 가했다. 1940년 말 중국군사위원회는 각지의 군사장관들에게 한국광복군의 활동을 엄격히 단속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국민당 정부의 주쟈화를 창구로 한국광복군 승인을 위한 교섭을 시작하였다. 주쟈화는 장제스와 중국군사위원회 판공청(辦公廳)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국광복군의 추인을 건의하고 함께 항일전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요청하였다. 특히 장제스에게 “김구의 말을 살펴보면 실정(實情)에 해당합니다. 과연 한적(韓籍) 사병의 반정(反正)을 책동한다면 직접 우리나라의 항전에 유리할 것”이라고 보고하여, 중국 국민당 정부가 한국광복군을 승인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김구 역시 주쟈화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여 “선생의 가르침과 도움으로 한국광복군 문제가 일단락 되었다”면서 감사의 뜻을 전한 바 있다. 이후에도 한국광복군의 편제와 운용에 관하여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아울러 1942년에는 조선의용대의 한국광복군 편입 당시에도 대한민국임시정부 측의 입장을 중국 고위층에 전하고 이를 다시 김구에게 전하는 등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42년 6월에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승인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장제스에게 중국 국민당 정부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승인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한 바 있다.
첫째, 항전 개시가 5년이 지난 시점에 아시아 문제만큼은 중국 측의 의견을 중시할 것이라는 점 둘째, 소련이 일본과 중립협정을 맺었지만 미국과 영국의 원조가 시급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으리라는 점 셋째, 향후 소련이 한인 부대를 이용하여 한국 소비에트 정부를 건설할 가능성이 큰 만큼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
국제 관계상 중국이 서둘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승인하고 이를 외교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었다. 이후에도 주쟈화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은 대일 항전의 전선을 굳건히 지킬 수 있었다. 정부는 1977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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