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1월 28일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미국 주중대사 예정자인 크레인(Charles Richard Crane)의 환영회에 신한청년당 여운형(呂運亨)이 참가시켜 그를 면담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1932년 4월 상하이 홍구공원의 윤봉길 의거 직후 그의 집으로 찾아온 김구, 엄항섭(嚴恒燮),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安恭根), 김철(金喆)을 한 달 동안 그의 집에 피신하게 하였다. 그의 아내 제라딘과 함께 김구 일행을 중국인으로 위장하여 상하이를 탈출하도록 도왔다. 1936년 9월 상하이를 떠나 중국 난징(南京) YMCA 총무로 전임하였다. 1937년 12월 일본군이 난징대학살을 자행하자, 중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독일 지멘스사 남경지사장 욘 라베(John Rabe)·남경대학 미국인 교수 마이너 베이츠(Miner Searle Bates)등과 함께 국제위원회를 조직하고,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하였다. 1939년 중국 충칭(重慶) YMCA 총무로 전임하여 중국에서 벌어지는 미군 작전의 고문 자격으로 참가하여 중국어 통역을 맡았다. 부인 제라딘(Geraldine Townsend Fitch)은 미국에서 한인협회에 참여하여 미국 정부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을 요구하였다. 1944년 6월 미국 국무부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인적구성과 종전 이후 이들이 한국에서 담당할 역할을 정리한 보고서를 보냈다. 1979년 1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클레몬드(Claremont) 자택에서 별세했다. 정부는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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