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사단은 1948년 6월 14일 충청북도 충주에서 창설된 제4여단을 모체로 태동하였다. 같은 해 11월 20일 부대명칭을 제6여단으로 개칭한 제4여단은 사령부를 강원도 원주로 이동한 후인 1949년 5월 12일 육본 일반명령 제15호에 의거 사단으로 승격되어 제6사단이 되었다.
예하 제7연대를 춘천 일대에, 제2연대를 인제와 홍천 지구에 배치해 38도선 경비임무를 수행하던 제6사단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춘천-홍천 지구에서 6월 30일까지 적의 남하를 성공적으로 저지하였으나,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횡성-충주로 철수하면서 지연전을 전개해 많은 전과를 올렸다. 특히 초기 전투에서 북한군 제2사단과 12사단의 진출을 성공적으로 저지하였다. 사단의 축차적인 저항에 부딪친 적은 자주포를 포함한 인원 및 장비의 많은 손실을 입고 춘천-홍천 축선으로의 진출이 지연되어 수도권 포위를 위해 우회기동하려던 그들의 작전계획에 큰 차질을 빚었다.
아군의 한강방어선이 붕괴된 후인 1950년 7월 5일부터 10일까지 사단은 음성 지구에서 적 선두부대인 제15사단 48연대를 기습․격퇴하여 국군의 전열 재정비를 도모했으며, 이어진 이화령과 문경 지구에서도 적 제1사단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해 상주로의 진출을 차단하였다. 지연전을 전개하면서 낙동강방어선까지 철수한 사단은 1950년 8월 30일 영천 북방의 신녕 지구에서 마지막 공세를 통해 아군 제8사단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영천 동측방으로 진출하려던 적 제8사단의 침공을 성공적으로 방어하였다. 1950년 9월 15일부터 반격작전으로 전환한 사단은 충주-횡성-춘천으로 진격, 38도선을 돌파하고 화천-원산-성천-순천-개천-고장을 거쳐 10월 26일에는 최선봉으로 한․만 국경인 초산까지 진격하여 국군의 위용을 떨쳤다.
권중식 하사는 개천-희천 진격전에 참가하여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0년 10월 23일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대전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에 위패번호 23-8-4914번으로 봉안하여 추모하고 있다.
수집처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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