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중원(中原) 사람이다. 만주에서 독립군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3·1운동을 계기로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무장투쟁론이 적극 대두되었으며, 모든 재만 동포들의 절대적인 지지 하에 70여 개의 독립군부대가 편성되었다. 특히 1920년 상반기에는 삼둔자전투, 봉오동전투 등 무장투쟁도 전개되어 일본군들을 자극하였다. 이에 일본은 훈춘사건(琿春事件)을 일으켜 군대출병의 명분을 갖고 독립군을 토벌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조병일은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에서 독립운동을 적극 후원하다가 1920년 11월 26일, 연길현 양지촌(陽地村)에서 일본군에게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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