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2월 하순경 스태거즈(John W. Staggers)와 함께 미국 국무부 극동국 솔즈베리(Salisbury)를 방문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과 한국인의 전쟁 참여를 촉구하였다. 1941년 6월 4일 충칭(重慶)의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는 대미 외교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에 주미외교위원부를 설치하고 이승만을 위원장으로 선임하였다. 이승만은 1942년 1월 16일 미국의 유력한 지인들로 한미협회를 조직하고, 이를 전면에 내세워 “한국의 독립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을 얻기 위하여 미국인들의 동정을 확보”하고자 미 연방정부를 대상으로 로비 및 선전활동을 전개하게 했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INC라는 통신사를 운영하고 있던 윌리엄스(Jay Jerome Williams)는 협회의 재무를 맡아 관리하면서 홍보 및 선전업무를 대행했다. 1942년 1월 9일 해리스(Frederick Brown Harris)·스태거즈와 함께 연명으로 미국 국무장관에게 서신을 보내 한국의 상황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승인을 청원하였다. 2월 4일 해리스·스태거즈와 함께 연명으로 미국 해군부장관 녹스(Frank Knox)에게 편지를 보내 한국독립과 항일무장투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 의견과 자료를 검토 동조하여 즉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1942년 2월 27일 라파예트호텔에서 개최된 한인 자유대회(재미한족전체대표회의)에서 사회자로 활동하였다. 1944년 6월 28일 미국 국무부 극동국 국장 그루(Joseph C. Grew)에게 편지를 보내 이승만을 소개하고 한국에 대한 미국정부의 책임을 논하면서 그를 위한 탄원서에 함께 서명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 밖에도 한미협회의 재무와 이승만의 고문으로서 한국에 대한 홍보 및 선전 업무를 수행했다. 1949년 4월 16일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정부는 195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본 보훈문화종합포털은 통합검색, 이용자 행동 분석 등을 통해
보다 나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쿠키를 사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개인정보를 포함하지 않으며,
통계적 분석 목적 외의 용도로는 절대 사용되지 않습니다.
거절 시 서비스 이용이 제한 될 수 있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