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楊平) 사람이다. 1919년 3월 12일 김백원(金百源)·문일평(文一平)·차상진(車相晋)·문성호(文成鎬)·조형균(趙衡均)·백관형(白觀亨) 등과 함께 보신각(普信閣) 앞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3월 1일 태화관(泰華館)에서 독립선언을 하고 체포된 손병희(孫秉熙) 등 민족대표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 3월 12일 서린동(瑞麟洞)의 영흥관(永興館)에서 만나 독립만세운동계획에 대하여 상의하였다. 이에 그들은 13도 대표자 명의로 조선 독립을 요구하는 애원서(哀願書) 2통을 작성하여, 1통은 조선총독에게 보내고 1통은 종로 네 거리의 보신각에 시위군중을 모아 그곳에서 낭독하기로 하였다. 애원서가 작성되자 차상진과 문성호가 그 중 1통을 조선총독에게 보내는 것을 담당하고, 그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보신각으로 나아갔다. 수백명의 모인 보신각 앞에서 문일평이 대표로 이를 낭독하고, 이어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본 보훈문화종합포털은 통합검색, 이용자 행동 분석 등을 통해
보다 나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쿠키를 사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개인정보를 포함하지 않으며,
통계적 분석 목적 외의 용도로는 절대 사용되지 않습니다.
거절 시 서비스 이용이 제한 될 수 있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