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중식 일등병은 생년월일과 출신지는 미확인되었으나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본부 직할부대에서 복무하였다.
육군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서 일제히 38도선을 돌파하면서 서부전선의 경기도 문산지역과 강원도 철원지역으로 남침의 주력을 지향하고, 중동부전선에서는 화천, 춘천지역 그리고 일부는 동부전선인 강원도 인제, 홍천지역과 양양, 강릉 방향으로 남침을 개시하자 이들의 공격을 저지하면서, 동년 8월 1일 낙동강 선까지 지연전을 수행하였다.
육군은 낙동강 방어선에서 지연전을 수행한 후, 이곳에서 유엔군과 강력한 방어작전을 실시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는데 성공하고 1950년 9월 중순 작전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되자, 9월 15일 단행된 인천상륙작전과 더불어 낙동강 전선에서 반격작전을 개시하여 10월 1일 38도선을 회복하는데 성공하고 북진을 계속하여 북한의 초산, 혜산진, 청진까지 진격하는 대전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하여 1950년 11월 24일 공격작전을 중단하고 방어작전으로 전환한 후, 경기도 수원으로부터 강원도 강릉 선까지 축차적으로 후퇴작전을 실시하여 방어작전을 전개하다가, 일제히 재반격작전을 실시하여 1951년 3월말에는 38도선을 다시 회복하는데 성공하였다.
고중식 일등병은 육군이 일제히 재반격작전을 실시하여 38도선을 다시 회복하는데 성공하던 기간 중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1년 3월 24일 장렬히 전사하였으나 전사장소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기리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수집처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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