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만주지역에서 독립운동단체들이 무장세력을 보유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였을 무렵, 국내에서는 3·1운동이 거족적으로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무장투쟁론이 적극 대두되었으며, 재만 동포들의 절대적인 지지 하에 70여 개의 독립군부대가 편성되었다. 이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국내진공작전을 전개, 일본군 국경수비대를 교란시키는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서 만주에 진출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독립군은 일본군의 대대적인 탄압에 밀려 소련·연해주 등지를 전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유시참변 이후 독립군은 다시 만주에 돌아와 항일투쟁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정익무는 이러한 시기인 1922년 2월 26일 평북 창성(昌城) 경찰서 일경에게 붙잡혀 압송 도중, 독립군과 일경의 전투를 틈타 도주를 기도하다가 얼음에 빠져 익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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