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4월 5일 「조선특별연고삼림양여령」이 발포되자 마을 사람들은 임야의 소유권 획득을 위하여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수수료를 납부했다. 그런데 월야공립보통학교(月也公立普通學校)의 일본인 교장이 학교림(學校林) 조성을 이유로 해당 임야의 무상양도를 신청하여 허가를 받았다. 그에 따라 1928년 5월 22일부터 함평군 측량기수가 임야 측량을 시작하자 마을 동민들이 이를 저지하며 항쟁하였다. 5월 25일에는 70~80 명의 부락민들이 측량에 저항하였다. 5월 26일에는 100여 명의 주민들이 면사무소로 몰려가, 면장에게 임야반환승락서를 교부하라고 요구하였다. 김권봉은 이와 같은 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리고 5월 26일에 월야면사무소 문서창고에 들어가 면장을 끌어냈다. 같은 날 밤 경찰관주재소 일본인 서장과 경관을 곤봉으로 구타하여 응징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28년 11월 9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요‧주거침입‧불법체포‧상해’등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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