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주(楊州) 사람이다. 1938년 3월 서울 창천감리교회(滄川監理敎會) 예벧청소년회를 중심으로 오순환(吳純煥)·정은태(鄭銀泰)·이선영(李善泳) 등이 조직한 비밀결사단체 창천체육회(滄川體育會)에 가입하였다. 이들은 조선총독을 비롯한 일제고관(日帝高官) 폭살(爆殺) 등을 목적으로 활동하다가, 거사(擧事)에 필요한 무기조작기술 등을 습득하기 위하여 인천조병창(仁川造兵廠)에 입사한 동조직(同組織) 회장 오순환 등 전회원(全會員)이 일경에 붙잡혔다. 김군희는 1942년 8월 26일 피체되어, 1944년 5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 400일 통산)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