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원은 1919년 4월 1일 갈전면 아우내 장날에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시위 중 일본 군경의 발포로 19명이 순국하고 조인원도 총에 맞아 사망하였으며, 그의 어머니 또한 만행으로 순국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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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남성
본적지
충청남도 천안
생몰 연월일
1887-07-27 ~ 1919-04-01
운동계열
3.1운동
포상
애국장 (1991)
활동정보
1919년 4월 1일 홍일선(洪鎰善)·김교선(金敎善)·한동규(韓東奎)·이순구(李旬求)·조인원(趙仁元)·유관순(柳寬順) 등이 갈전면(葛田面) 아우내(竝川) 장날을 기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날 오후 1시경 조인원이 태극기와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우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3천여명의 시위군중이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니, 아우내 장터는 만세소리로 가득찼다.
시위군중이 계속 독립만세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들고 일본 헌병주재소로 접근하자, 시위군중의 기세에 놀란 일본 군경들이 주재소에서 기총을 난사하고, 또 천안에서 불러들인 헌병과 수비대까지 가세되어 무자비하게 총검을 휘둘러대며, 계속 발포하여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柳重權) 등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30명 이상이 부상하는 일대 참사가 일어났다. 이날 그도 적의 흉탄에 맞아 쓰러졌는데, 일본 헌병은 잔인하게도 다시 머리에 대고 총을 쏘아 죽였고,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아들의 시체를 안고 통곡하던 어머니 최정철(崔貞徹) 마저도 잔악무도하게 창칼로 찔러 순국케 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