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거 직후 천궈푸(陳果夫)가 김구를 자싱(嘉興)으로 피신시킬 것을 샤오정(蕭錚)에게 지시하자, 자싱 출신이자 동북의용군(東北義勇軍) 후원회 회장인 추푸청(褚補成)이 김구 지원에 나섰다. 김구는 추푸청의 당시 활약에 대하여 “저선생은 자기 수양아들 집의 호숫가에 정교하게 지은 정자 한 곳을 나의 침실로 정해주었다. (중략) 일본인으로서 우리 돈을 먹고 밀탐한 자도 여러 명 있었다. 일이 이미 여기에 이르니 부득불 자싱(嘉興)에 오래 있기는 위험하다 싶어 자싱을 떠날 생각을 했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자싱을 떠나 추푸청의 며느리 주자루이(朱佳蘂) 처가인 하이옌(海盐)으로 피신해 일본 당국의 단속을 피할 수 있었다. 훗날 김구는 추푸청의 후의에 대하여 “우리 국가가 독립이 된다면 저부인(주자루이)의 용감 친절을 우리 자손이나 동포가 누가 공경하고 우러러 사모하지 않으랴. 활동사진은 찍어두지 못하나 글로라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자칫 일본 당국의 단속에 의해 체포될 위기에 놓였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의 안위를 보전해 준 호의로 인해 항일 독립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정부는 1996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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