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북 위원(渭原) 사람이다. 만주에서 독립군 연락원으로 활약하였다. 3·1운동을 계기로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무장투쟁론이 적극 대두되었으며, 모든 재만 동포들의 절대적인 지지 하에 70여 개의 독립군부대가 편성되었다. 이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국내진공작전을 전개, 일본군 국경수비대를 교란시키는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서 만주에 진출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독립군은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에 밀려 소련·연해주 등지를 전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유시참변 이후 독립군세력은 다시 만주로 돌아와 항일투쟁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시기인 1924년 경 장찬섭은 평북 위원군 대덕면(大德面)에서 독립군 연락원으로 활동하다가 붙잡혀 고문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본 보훈문화종합포털은 통합검색, 이용자 행동 분석 등을 통해
보다 나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쿠키를 사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개인정보를 포함하지 않으며,
통계적 분석 목적 외의 용도로는 절대 사용되지 않습니다.
거절 시 서비스 이용이 제한 될 수 있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