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는 1942년 경남 창원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청년독립회를 조직하고 신사참배거부운동을 전개하였다. 1944년 이들의 활동이 발각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8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1995년에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이명
-
성별
남성
본적지
경상남도 창원
생몰 연월일
1925-12-06 ~ 2002-04-08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
대통령표창 (1995)
활동정보
경남 창원(昌原) 사람이다. 그는 1942년 7월경 창원군 창원면 동정리(東井里) 소재 창원신사(昌原神社) 뒤에서 창원보통학교(昌原普通學校) 출신의 급우 박상규(朴尙圭)·박대근(朴大根) 등 10여 명과 함께 조국 독립을 목적으로 청년독립회(靑年獨立會)를 조직하여 신사참배거부운동(神社參拜拒否運動)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는 한국을 강점한 이래 일관되어 온 것이었으나 1931년 만주침공 이후 강화되었으며, 특히 1937년 중일전쟁을 전후하여 폭압적으로 자행되었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의 전세가 기우는 상황에서 일제는 소위 국민총동원체제 아래 민족말살의 일환으로 신사참배를 더욱 강요해 갔다. 이러한 때 김광수 등은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면서 1943년 4월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벽보를 창원역과 주요 관문에 붙임으로써 민족의식 고취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이들의 활동이 1944년 12월 진해헌병대에 발각되었고, 일제는 이 일을 '창원만세사건'이라 불렀다. 이로 인하여 그는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이첩 계류되어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다 8·15광복을 맞이하여 부산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이 때 고문의 여독으로 백정기(白政基)·김명수(金明洙)는 출옥 직후 순국하였고, 나머지 인사들도 모진 고문의 여독으로 고생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