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운동 이후 만세시위는 독립운동의 주요한 방식이 되었다. 당시 임창숙은 함경남도 영흥군 홍인면의 영흥공립보통학교를 다녔다. 학교 재학중인 1920년 3월 7일 졸업생 김정렬 등과 함께 학생들을 모아 “작년 이맘때 우리나라가 독립을 선언하였고 올해에도 운동을 계속해야 하는데, 우리 보통학교 학생도 나이 열다섯 살 이상이면 성인이라 말할 수 있으므로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라고 주장하였다. 같은 날 자신의 집에 다른 학생들과 함께 종이와 물감을 사 가지고 와서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이어서 “가난한 사람들이여 일어나라”라는 라는 내용의 격문을 태극기와 함께 군중에게 배포하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로인해 체포되어 1920년 4월 경성복심법원에서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3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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