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진명은 1935년 서울 공덕동(孔德洞)에 있던 용일양조장(龍一釀造場)에서 이금진(李金振),윤락삼(尹樂三),최영진(崔榮鎭),구승회(具承會) 등과 함께 조선총독부 고관을 폭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평소 안중근(安重根),윤봉길(尹奉吉),이봉창(李奉昌) 의사를 숭배하여 이들과 같은 방법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려 하였다. 인진명 등은 일제의 조선 침략과 만주 침략에 대한 토론을 통해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러한 활동 끝에 인진명 등은 조선총독(朝鮮總督) 우원일성(宇垣一成)과 정무총감 이하 각 고관을 폭살하고 철도와 체신국 등 주요 기관을 폭파하기로 계획하였다. 당시 인진명은 중석광산의 화약 취급 주임이었다. 따라서 동료들에게 폭탄 제조방법과 함께 화약을 제공하였다. 이들은 1935년 11월과 12월에 걸쳐 폭발물 4개를 만들었고, 이를 이용하여 조선총독을 폭살하려고 하였다. 첫 번째 거사는 조선총독이 일본을 갔다가 서울역에 도착하는 시점으로 잡았다. 하지만 그 계획은 주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시도 하지 못했다. 이후 다시 조선총독이 온양(溫陽) 온천에서 휴양하고 돌아오는 기회를 포착, 서울역 앞 세브란스 병원 근방에서 폭살하려다 이마저 여의치 않아 뒤로 미루었다. 인진명과 동료들은 폭탄을 다시 제작하여 효창공원(孝昌公園)에서 시험 폭파까지 해 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인진명을 비롯한 동지들이 붙잡혀 실패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인진명은 체포되어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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