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제창과 민족대표의 독립선언을 계기로 전국의 조선인들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도 장날인 3월 23일에 1차 만세시위가 시작되어 6~7천 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했다. 다음 장날인 4월 2일에도 수천 명의 시위대가 참여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김개동은 이러한 고향의 만세시위에 합류하여 열성적으로 만세를 외치고 거리를 행진했다. 그로 인하여 1919년 5월 9일 마산법원지청에서 징역 6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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