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1월 인천노동조합(仁川勞動組合) 위원으로 선출되어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동년 5월 메이데이 기념 시위를 준비하던 중 일제의 예비검속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1년 인천청년동맹(仁川靑年同盟) 간부로 활동하는 한편 1931년 2월에는 신간회(新幹會) 인천지회에서 활동하였다. 동년 6월 인천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메이데이와 6·10만세운동 기념시위를 계획하고 격문을 살포하는 등의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동년 7월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과 관련하여 시국연설회를 개최하였으며, 노동자를 중심으로 항일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이 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