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인천노동조합 위원으로 선출되어 노동운동을 전개한 후, 1931년 인천청년동맹 간부로 활동하며 메이데이 기념 시위를 준비하다가 체포되었다. 만보산사건과 관련한 시국연설회를 개최하고 항일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명
-
성별
남성
본적지
경기도 강화
생몰 연월일
1900-01-26 ~ 1945-09-08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
애족장 (2005)
활동정보
1930년 1월 인천노동조합(仁川勞動組合) 위원으로 선출되어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동년 5월 메이데이 기념 시위를 준비하던 중 일제의 예비검속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1년 인천청년동맹(仁川靑年同盟) 간부로 활동하는 한편 1931년 2월에는 신간회(新幹會) 인천지회에서 활동하였다. 동년 6월 인천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메이데이와 6·10만세운동 기념시위를 계획하고 격문을 살포하는 등의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동년 7월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과 관련하여 시국연설회를 개최하였으며, 노동자를 중심으로 항일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이 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