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우는 1919년 3월 18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는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배부하며 민중을 규합하였고, 시위 도중 체포되어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명
姜達永
성별
남성
본적지
경상남도 진주
생몰 연월일
1888-05-05 ~ 1940-06-07
운동계열
3.1운동
포상
애족장 (1990)
활동정보
경상남도 진주(晋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18일 이강우(李康雨)·김재화(金在華)·권채근(權采根)·박진환(朴進煥)·박용근(朴龍根)·강상호(姜相鎬) 등과 함께 진주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3월 1일 서울에서의 독립만세운동 소식을 전해듣고, 진주에서도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심하고 같은 마을의 애국 청년들과 함께 구체적인 거사 방법을 논의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먼저 3월 10일경,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만들어 비밀리에 배부하면서 인근 각면의 유지와 민중을 규합해 갔다. 이때 그는 김재화·박진환과 함께 각 사회단체를 찾아다니며 독립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고하였다.
3월 18일 오후 1시경,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애국가를 제창하며 독립만세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이때 일본 헌병과 경찰이 소방대까지 동원하여 시위행렬을 저지, 해산시키려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자 일본 군경은 주동 인물들에게 잉크를 뿌려 두었다가 그것을 증거로 하여 그날 저녁부터 체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때 체포되어 대구(大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