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북 삭주(朔州)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가한 후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만주에서는 의민사(義民社)를 조직하여 사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한족회 민사부장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또한 서로군정서의 부관으로도 일하였다. 1920년에는 벽산대(碧山隊)를 조직하여 봉오동(鳳梧洞) 전투시 홍범도(洪範圖)와 함께 전투에 참가하였다. 1921년에는 양승우(楊承雨)와 같이 벽창(碧昌) 청년의용대를 조직하여 총지휘에 임명되었으며, 1924년에는 양승우와 함께 창성(昌城)·갑암(甲岩)출장소를 습격하기도 하였다. 1925년에는 정의부의 중앙위원에 임명되어 활약하였으며 동년 10월 9일에는 평북 독판에 임명되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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