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함평(咸平) 사람이다. 1920년 전남 함평읍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곳의 유지 조사현(曺士鉉), 송태호(宋太浩), 정기연(鄭琪衍) 등은 일찍부터 거사에 뜻을 두고 동지들을 규합하였는데 윤태완도 이들과 함께 만세시위 계획에 동참하여 독립운동에 나섰다. 이들은 거사일을 3월 26일로 약정하고 태극기를 준비하는 한편 보통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각지의 군중 동원에 나섰다. 그와 김용언(金用彦), 이행록(李行錄) 등이 앞장서서 모든 준비를 갖추었다. 드디어 3월 26일 오후 4시경 미리 연락된 보통학교 생도들과 시민 등 수백 명이 시장에서 독립만세의 함성을 올렸다. 조사현 등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에 돌입하였다. 특히 보통학교 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모습은 연도의 시민들을 격동시켜 많은 이들이 시위대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일경과 헌병이 평화적인 시위대를 총검으로 탄압하여 1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조사현 등 20여 명의 주동 인사들이 체포되었다. 그날 밤에도 시위는 계속되어 읍 북쪽의 기산(箕山)에서 횃불을 높이 올리고 만세의 함성이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 일로 체포되어 1920년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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