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陜川)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22일 합천군 묘산면(妙山面)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묘산면 팔심리(八尋里)에는 윤씨 일가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는데,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윤병은은 윤병석(尹炳奭)·윤병양(尹炳陽) 등 일가 사람들과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거사일을 3월 22일로 정하고 이웃 각 동리의 인사들에게 비밀리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 동지들을 규합해 갔고, 또한 거사에 필요한 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제작하였다. 그리하여 거사 당일 오전 11시에 주민 1백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한 뒤, 시위대는 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이 때 시위대는 일군경과 연락을 차단하기 위해 연도의 전신주를 절단하는 등 주도 면밀하게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뒤늦게 출동한 일본 헌병대와 경찰은 시위대를 향하여 무차별 총격을 가함으로써, 만세현장에서 윤병하(尹炳夏)와 윤병교(尹炳喬) 등 2명이 순국하고 다수가 부상을 당하는 희생을 치러야 했다. 이 때 시위대의 선봉에 서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던 그는 일군경에 의해 현장에서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이 일로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19년 4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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