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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상세정보

윤봉길의사 유품(1972-2)
국적/시대
한국 • 1932년
통합 분류
기록유산 - 문서류 - 문서류
수량/면적
10종 35점
소재지
충청남도 예산군
윤봉길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량리에서 태어나, 덕산보통학교와 오치서숙에서 공부하였고 19세 때 고향에 야학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했다. 20세 때 각곡독서회를 조직하고 『농민독본』을 편찬했으며, 22세 때 월진회를 조직, 농촌운동을 정열적으로 전개하였다. 윤봉길의사는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23세때 중국으로 망명하여 1931년 김구선생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 그 뒤 항일 투쟁을 계속하다가 1932년 4월 29일 혼자 일본의 상해사변 전승축하회가 열리던 상해의 홍구공원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총사령관 시라가와 등 일본의 군수뇌부를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자리에서 체포된 윤봉길 의사는 군법재판 단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 일본으로 이송되어 1932년 12월 19일 일본 대판 위수형무소에서 2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윤봉길의사 유품 내역 1.회중시계는 상해(上海)의 홍구공원(虹口公園)으로 떠나는 날 아침 김구(金九) 선생과 바꾸어 찬 낡은 시계인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몸에 지닌 유품(遺品)이다 지름 5㎝, 줄길이 30㎝, 두께 1㎝, 스위스제(製)이다. 2.윤봉길의사 유품-지갑부중국화폐(尹奉吉義士 遺品-지갑附中國貨幣)는 중화민국건국기념폐인 1원은화 3개, 광서원보인 칠전이분 1개, 이십원지폐인 2각화폐 1매, 이십원동전인 2박주전 5개가 있으며, 지갑의 크기는 가로 7㎝, 세로 11.5㎝이다. 3.윤봉길의사인(尹奉吉義士 遺品-尹奉吉義士印)은 골각에 ‘윤봉길신’이라 새긴 것으로 홍구공원에서 거사를 치를 당시의 몸에 지니고 있던 유품이다. 4.윤봉길의사 유품(尹奉吉義士 遺品)-손수건은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일으킨 독립운동가 윤봉길(1908∼1932)의사가 남긴 유품들 가운데 하나인 손수건으로 홍구공원에서 거사를 치를 당시에 몸에 지니고 있던 유품이다. 5.윤봉길의사 유품-안경집(尹奉吉義士遺品 - 眼鏡集)은 홍구공원에서 거사를 치를 당시에 몸에 지니고 있던 유품으로, 사다리꼴의 형태로 되어있다. 6.윤봉길의사 유품-일기(尹奉吉義士 遺品-日記)는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일으킨 독립운동가 윤봉길(1908∼1932)의사가 남긴 유품들 가운데 일기이다. 이 일기는 윤봉길의사가 직접 묵으로 쓴 것으로, 각 11행이며 27매 1책으로 되어있다. 7.윤봉길의사 유품-월진회창립취지서(尹奉吉義士 遺品-月進會創立趣旨書)는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일으킨 독립운동가 윤봉길(1908∼1932)의사가 남긴 유품들 가운데 하나로, 윤봉길의사가 월진회를 창립하면서 직접 묵으로 쓴 문서이다. 8.윤봉길의사 유품-농민독본(尹奉吉義士 遺品-農民讀本)은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일으킨 독립운동가 윤봉길(1908∼1932)의사가 남긴 유품들 가운데 하나로, 어린아이들에게 글을 깨우치고자 펴낸 농민계몽서이다. 교과서 제1권 8과, 제2권 7과로 되어있으며, 2권 모두 프린트한 것이다. 9.윤봉길의사 유품-형틀대(尹奉吉義士 遺品-刑틀臺)는 1932년 12월 29일 일본대판위수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할 때 윤봉길의사를 묶어 세웠던 것이다. 10.윤봉길의사 유품-편지(尹奉吉義士 遺品-便紙)는 이 편지들은 총 4통으로 되어 있으며, 충의사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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