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1919년 전남도청에서 고원으로 근무하던 중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의 형을 치렀으며, 1923년 11월 경북 안동군 풍산에서 풍산소작인회를 조직하고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4년 4월 조선勞농총동맹 창립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동년 6월 당국의 언론집회에 대한 탄압에 대항하기 위해 서울시내 조선교육협회에서 개최된 언론집회압박탄핵회라는 모임에서 동회의 방침을 결정하는 위원으로 선임되어 결의문 작성에 참여하였으며, 1925년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로 활동하였고 1926년에는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집행위원으로 6·10만세운동을 추진하다가 체포되어 1928년 2월 징역 5년을 받고 복역 중 1930년 4월 17일 옥사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위치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