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윤현진은 1892년 양산군 상북면에서 출생하였으며 1906년 일본 동경 명치대학교에서 유학하였다. 유학 중 조선유학생학우회를 조직해 활동하였으며, 1909년 백산 안희제 등과 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였다. 양산에 의춘학원을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3·1운동 때는 고향에서 만세시위에 적극 가담하여 활동하다 중국 상해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가하였다. 1919년 4월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출되고, 이어 초대 재무차장에 선임되었다. 이어 임시정부 상임위원회에서 재무위원장으로 선임되었고, 제2차 임시의정원 회의에서는 다시 내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동년 5월에는 구급의연금모집위원이 되어 어려운 임시정부의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하였다. 1920년에는 독립신문사를 주식회사로 확장하고 1921년 5월에는 국민대표회의기성회를 조직하여 활동했으며, 같은 해 중한국민호조사를 결성, 중국과 같이 공동의 적인 일본을 섬멸할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할 것을 결의하였다. 독립운동에 헌신하던 그는 건강이 나빠져 상해에서 30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윤현진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
대한국사 윤현진선생 기념비는 구국투쟁에 헌신한 윤현진을 추모하기 위해 양산군민 성금으로 건립하였다.
위치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