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조재만은 삼창리 현고마을에서 태어나 백학학원과 대구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휘문고보에 진학한 뒤 친일교장 배척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제적됐다. 그는 1926년 9월 대구에서 이육사, 이정기, 장진홍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를 만들고 휘문고 출신들과 함께 6.10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같은 해 12월 중국으로 망명한 조재만은 중국에서 전개되던 독립운동 상황을 인식하고 한국인 군관학교 설립자금을 모으기 위해 다시 국내에 잠입, 1927년 10월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2년 3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고향에 돌아와서 청년들을 상대로 계몽운동과 항일의식 고취에 힘써 후학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는 정신적 지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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