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전북 무장군 풍면 설천(茂長郡 豊面 雪川)에서 출생하였다. 필묵상(筆墨商)을 경영하고 있던 그는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통탄하고 있던 중 유지인 심남일(沈南一)로부터 의병을 일으키자는 격문을 받고서 결의 형제를 맺고 함께 김율(金聿)이 사망하자 심남일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그의 선봉장이 되었다. 그 이후 그의 의병생활은 심남일과 일체가 되어 시종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의 부대는, [전투일] [전투장소] 1908년 3월 7일 강진 오치동(康津 吾治洞) 4월 15일 장흥 곽암(長興 藿巖) 6월 19일 남평 장담원(南平 長淡院) 6월 25일 능주 노구두(綾州 老狗頭) 7월 30일 영암 사촌(靈巖 沙村) 8월 1일 나주 반치(羅州 盤峙) 9월 20일 장흥 신풍(長興 新豊) 10월 9일 해남 성내(海南 城內) 10월 27일 능주 돌정(綾州 石亭) 등지에서 전투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능주 돌정의 전투에서는 심남일과 강무경이 모두 병석에 눕게 되는 불운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왜병 삼백여 명과 접전하여 적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 다시 이듬해인 1908년 봄부터 전투를 재개하여 3월 8일 남평 거성(巨聲), 4월 2일 능주 풍치(風峙), 5월 12일 보성 천동(泉洞) 등지에서 크게 접전을 하여 적 수십 급을 사상하고 다수의 무기를 노획하였다. 그 후 해산 조칙(詔勅)을 받고 1909년 7월 21일 의진을 부득이 해체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나 해산 후에도 강무경은 심남일과 거취를 함께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신병 치료차 이전의 격전지였던 풍치의 바위굴에서 은신생활을 하던 중 적병에게 발각되어 10월 9일 심남일과 함께 체포되어 1910년 6월 3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아 공소하였으나, 공소 취하로 형이 확정되어 동년 10월 4일 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위치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