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우당 이회영 선생은 일가가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만주로 망명한 후, 독립군 양성 기지인 경학사와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데 앞장섰다.
3·1 운동 이후에는 무정부주의(아나키즘)로 선회하여 재중국무정부주의자연맹 등을 이끌며 국제적인 연대 속에서 강력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평생을 군자금 모집, 고종 망명 시도, 의열 투쟁 기획 등에 헌신하던 중, 1932년 만주 작전을 위해 대련으로 이동하다 일경에 체포되었다. 모진 고문 속에서도 끝내 지조를 지키다 옥중에서 순국하였으며,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본 기념관은 항일독립투쟁의 초석을 마련한 우당 이회영 선생과 그 6형제를 기념하기 위한 공간이다.
2001년 6월 29일, 종로구 사직동에 유족들이 중심이 된 '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가 주도하여 민간 차원에서 건립하고 '우당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개관했다.
2021년 6월 9일, 서울시 중구 예장동에 새로 조성된 '남산예장공원' 내부로 이전 개관하였으며, 명칭을 '우당이회영기념관'으로 변경하였다. 이전 건립을 서울시가 주도하여, 이때부터의 소유자는 서울시, 관리자는 기념사업회가 되었다.
2024년 9월 11일, 다시 원래의 터전이었던 종로구 사직동으로 자리를 옮겨 재개관하였다.
이회영기념관이 위치한 사직동 언덕의 이층집은 20세기 초 미국 남감리교 선교사들이 지은 풍부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이다. 과거 미국 남감리교 선교사들의 사택이자 백사 이항복의 집터(필운대) 뒤편에 위치한 곳이다.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운 이항복의 후손인 우당 이회영 선생은 그 뜻을 이어받아 전 재산을 바치고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무장독립투쟁의 기틀을 마련했다.
남산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온 이회영기념관의 내부에는 시민들이 머무는 사랑방인 ‘벗집’이 마련되어 있다. 이 이름은 평생 독립투사들과 겨레, 그리고 억압받는 아시아의 모든 이들을 위아래 없이 다감하게 대했던 선생의 아호 ‘우당(友堂)’을 뜻을 풀어 지은 것이다. 이회영기념관은 이 집의 오랜 역사와 내력을 함께 기억하고자 건물에 ‘사직동 언덕 묵은집’이라는 정겨운 별칭을 붙여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위치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