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안공근
7월의 독립운동가 안공근 선생(1889.7.11 - 1939)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 미관과 공동으로 중국 해에서 독립원동 촉성회를 결성하고, 김구 선생과 함께 한인에 국단을 조직하여 일제 요인 및 친일파를 암살하고, 한인군관학교를 설치하여 독립군을 양성하는 등 1920~1930년대 무장투쟁에 앞장선 안공근 선의 공훈을 미리고자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안공근 선생은1889년 도 신천군에서 안태훈 진사와 조씨사이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독립운동사의 큰 인물인 친형 안중근(1879 1910), 안정근 (1884 1949)과 함께 성장하였고 경성사범학교를 졸업 후 진남포 공립보통학교에서
아동을 가르치다 안중근의거 직후에 망명을 선택하게 된다.
1910년 러시아로 망명한 선생은 형 안중근 의사의 뜻에 따라 러시아어를 배웠고 1921년 7월 임시정부 최초의 러시아대사가 되어 독립자금 확보를 위해 외교를 벌였으며 상해 교민단, 독립운동 성회, 한국독립당 등 다양한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선생은 1931년 김구선생과 함께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이들해 이봉창의거' 와 운봉길의거' 를 이루어 냈고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과 내에 설치된 한인특별반 및 후신인 한국특무대독립군의 운영을 맡아 활동하던 중 1939년 5월 30일 장렬히 생애를 마감하였다.
선생의 항일정신을 기려 정부에서는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26년 2월 중국 상해한인교민단장, 같은 해, 5월 중국 상해에서 독립운동성회 결성 1931년 11월 한인애국단 조직하여 의열투쟁 지휘 1934년 1월부터 중국 하남성 낙양군관학교 분교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여 독립군을 양성 1935년 한국독립당, 1937년 한국국민당 주요 간부로 친일파 임실, 처단 및 독립군 양성에 주력 1936년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역임
우익과 좌익계열의 독립운동단체 통합에 노력하였다.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 미관과 공동으로 중국 해에서 독립원동 촉성회를 결성하고, 김구 선생과 함께 한인에 국단을 조직하여 일제 요인 및 친일파를 암살하고, 한인군관학교를 설치하여 독립군을 양성하는 등 1920~1930년대 무장투쟁에 앞장선 안공근 선의 공훈을 미리고자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안공근 선생은1889년 도 신천군에서 안태훈 진사와 조씨사이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독립운동사의 큰 인물인 친형 안중근(1879 1910), 안정근 (1884 1949)과 함께 성장하였고 경성사범학교를 졸업 후 진남포 공립보통학교에서
아동을 가르치다 안중근의거 직후에 망명을 선택하게 된다.
1910년 러시아로 망명한 선생은 형 안중근 의사의 뜻에 따라 러시아어를 배웠고 1921년 7월 임시정부 최초의 러시아대사가 되어 독립자금 확보를 위해 외교를 벌였으며 상해 교민단, 독립운동 성회, 한국독립당 등 다양한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선생은 1931년 김구선생과 함께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이들해 이봉창의거' 와 운봉길의거' 를 이루어 냈고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과 내에 설치된 한인특별반 및 후신인 한국특무대독립군의 운영을 맡아 활동하던 중 1939년 5월 30일 장렬히 생애를 마감하였다.
선생의 항일정신을 기려 정부에서는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26년 2월 중국 상해한인교민단장, 같은 해, 5월 중국 상해에서 독립운동성회 결성 1931년 11월 한인애국단 조직하여 의열투쟁 지휘 1934년 1월부터 중국 하남성 낙양군관학교 분교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여 독립군을 양성 1935년 한국독립당, 1937년 한국국민당 주요 간부로 친일파 임실, 처단 및 독립군 양성에 주력 1936년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역임
우익과 좌익계열의 독립운동단체 통합에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