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유희순
9월의 독립운동가 윤희순
기개와 열정의 삶, 최초의 여성의병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초기 을미의병부터 후기 정미의병까지 직간접으로 의병운동에 참여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의병지도자 윤회순 선생의 공훈을 기리고자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1860년 경기도 구리에서 운익상과 평해 황씨의 큰딸로 태어나 16세가 되던 해, 춘천 의병장 외당 유홍석의 장남이며 딸도창의대장 의임 유인석의 조카인 유제원과 결혼하였고, 시아버지 유홍석의 영향으로 의병운동에 뜻을 두게 되었다.
선생은 '안사람 의병가','의병군가','병정가' 등을 지어 항일의식을 고취시키고 여성들도 구국활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촉구하였으며, 친일파와 일본군에게 서신을 보내어 그들의 죄상을 꾸짖고 1907~1908년의 의병운동 때에는 강원도 춘성군(현 춘천시) 가정리에서 여자의병 30여명을 조직하여 군자금을 모아 의병운동을 지원하였으며, 8편의 의병가와 4편의 경고문을 남겼다.
1911년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중국으로 망명한 선생은 1912년 초 환인현으로 이주하여 항일 인재 양성을 위해 동창학교 분교인 노학당을 창립, 김경도, 박중수 등 50여명의 항일운동가를 양성하였으며, 힘든 항일운동을 하는 와중에 1913년 시아버지 유홍석이, 1915년에는 남편 유제원 마저 세상을 떠나버리자, 선생은 무슨 포가문으로 이주하여 조선독립단과 조선독립단 가족부대, 조선독립단학교를 설립하였으며 신빈 영릉에도 조선독립단 학교 분교를 두어 항일운동가 양성에 전력을 다하였다.
그 후 선생의 나이 73세 되던 1932년에 무순에서 일제와 싸울 준비를 하였으나 사전에 비밀이 누설되어 일본군의 급습을 받아 많은 회생자만 낸 채 패배하자 봉성현 석성으로 올겨 지속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1935년 해성현 묘관문에서 8월 1일 숨을 거두었다. 선생의 공적을 기려 정부에서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주요 공적
의병장 유흥석의 며느리로 인사람의병가, 의병군가, 병정가 등을 지어 항일의식을 고취
1907~1908년 강원도 춘성군 가정리에서 여자의병 30여명을 모아 의병운동 지원
1911년 4월 만주로 망명하여 시아버지 유흥석과 남편 유제원의 독립운동을 돕다가 1935년 천성 해성현 묘관둔에서 서거
의병운동에 뜻을 두고 항일의식을 고취시키고 노학당을 창립
기개와 열정의 삶, 최초의 여성의병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초기 을미의병부터 후기 정미의병까지 직간접으로 의병운동에 참여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의병지도자 윤회순 선생의 공훈을 기리고자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1860년 경기도 구리에서 운익상과 평해 황씨의 큰딸로 태어나 16세가 되던 해, 춘천 의병장 외당 유홍석의 장남이며 딸도창의대장 의임 유인석의 조카인 유제원과 결혼하였고, 시아버지 유홍석의 영향으로 의병운동에 뜻을 두게 되었다.
선생은 '안사람 의병가','의병군가','병정가' 등을 지어 항일의식을 고취시키고 여성들도 구국활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촉구하였으며, 친일파와 일본군에게 서신을 보내어 그들의 죄상을 꾸짖고 1907~1908년의 의병운동 때에는 강원도 춘성군(현 춘천시) 가정리에서 여자의병 30여명을 조직하여 군자금을 모아 의병운동을 지원하였으며, 8편의 의병가와 4편의 경고문을 남겼다.
1911년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중국으로 망명한 선생은 1912년 초 환인현으로 이주하여 항일 인재 양성을 위해 동창학교 분교인 노학당을 창립, 김경도, 박중수 등 50여명의 항일운동가를 양성하였으며, 힘든 항일운동을 하는 와중에 1913년 시아버지 유홍석이, 1915년에는 남편 유제원 마저 세상을 떠나버리자, 선생은 무슨 포가문으로 이주하여 조선독립단과 조선독립단 가족부대, 조선독립단학교를 설립하였으며 신빈 영릉에도 조선독립단 학교 분교를 두어 항일운동가 양성에 전력을 다하였다.
그 후 선생의 나이 73세 되던 1932년에 무순에서 일제와 싸울 준비를 하였으나 사전에 비밀이 누설되어 일본군의 급습을 받아 많은 회생자만 낸 채 패배하자 봉성현 석성으로 올겨 지속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1935년 해성현 묘관문에서 8월 1일 숨을 거두었다. 선생의 공적을 기려 정부에서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주요 공적
의병장 유흥석의 며느리로 인사람의병가, 의병군가, 병정가 등을 지어 항일의식을 고취
1907~1908년 강원도 춘성군 가정리에서 여자의병 30여명을 모아 의병운동 지원
1911년 4월 만주로 망명하여 시아버지 유흥석과 남편 유제원의 독립운동을 돕다가 1935년 천성 해성현 묘관둔에서 서거
의병운동에 뜻을 두고 항일의식을 고취시키고 노학당을 창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