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주기철
1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주기철 선생
경상남도 창원출신인 주기철선생님께서는 1916년에 민족사학오산학교를 졸업하셨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고향인 창원군 웅천면에서 독립만세시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습니다.
1920년 12월에는 경상남도 창원웅천청년운동단의 대표로 조선청년연합회의 창립총회에 참석하여의사로 선출되셨습니다.
1926년 평양신학교 졸업과 동시에 부산초량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여5년간 봉직하셨으며, 1931년에 마산 문창교회에서 다시 5년간 봉사하셨습니다.
1936년에는 길선주 목사의 후임으로 평양 산정현교회의 목사로 부임하셨습니다. 이때는 일제가 교회와 기독교신도들에게 궁성요배와 신사참배를 본격적으로 강요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는 기독교에서 우상을 승배하는 것은 계명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살아있는 일본왕이나 그 시조를 우상화하는 것은 그릇된 일이므로
일본궁성요배는 결단코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황실요배 및 신사참배거부안을 제출하여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해서 종교적 항일을 하셨습니다.
1938년2월에 일제의 탄압에굴복하여 장로교 평안북도노회가 신사참배를 결정하자 이에 반대하여투쟁하다가 일제 경찰에 피체되어 3개월간 구금되셨습니다.
1938년 9월에 일제의 강요와 탄압에 굴복하여 전국 장로회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자 그는 이에 정면으로 대항하여 일사각오 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고 조선민족의 애국심을 말살하려는 일본의악정을 규탄하자고신사참배거부를 교도들에게 호소하다가 다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하고 장기 구속되셨습니다. 가석방 후에도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으시고, 다시 교도들에게 신사참배 거부를 설교하셨습니다.
1940년7월에 일제는 소위불경죄 및 치안유지법위반등의 좌목으로 실형을 언도하였으며, 주기철선생님께서는 옥고를 치르시다 1944년 4월 21일 옥중에서 순국하셨습니다.
정부에서는 그의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선생의 뜻과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별도의 전사실을 마련하여 관련자료와 사진을 11월한 달간 전시하는 한편, 순국선열유족회에서도 이 달의 독립운동가 학술 강연회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여러분도 함께 참여함이 어떨까요?
천안 독립기념관 : 041) 560-0221~6 독립문공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 02) 363-9750 순국선열유족회 : 02) 365-4388
3·1운동에 참여하고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전개하다 옥중 순국
경상남도 창원출신인 주기철선생님께서는 1916년에 민족사학오산학교를 졸업하셨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고향인 창원군 웅천면에서 독립만세시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습니다.
1920년 12월에는 경상남도 창원웅천청년운동단의 대표로 조선청년연합회의 창립총회에 참석하여의사로 선출되셨습니다.
1926년 평양신학교 졸업과 동시에 부산초량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여5년간 봉직하셨으며, 1931년에 마산 문창교회에서 다시 5년간 봉사하셨습니다.
1936년에는 길선주 목사의 후임으로 평양 산정현교회의 목사로 부임하셨습니다. 이때는 일제가 교회와 기독교신도들에게 궁성요배와 신사참배를 본격적으로 강요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는 기독교에서 우상을 승배하는 것은 계명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살아있는 일본왕이나 그 시조를 우상화하는 것은 그릇된 일이므로
일본궁성요배는 결단코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황실요배 및 신사참배거부안을 제출하여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해서 종교적 항일을 하셨습니다.
1938년2월에 일제의 탄압에굴복하여 장로교 평안북도노회가 신사참배를 결정하자 이에 반대하여투쟁하다가 일제 경찰에 피체되어 3개월간 구금되셨습니다.
1938년 9월에 일제의 강요와 탄압에 굴복하여 전국 장로회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자 그는 이에 정면으로 대항하여 일사각오 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고 조선민족의 애국심을 말살하려는 일본의악정을 규탄하자고신사참배거부를 교도들에게 호소하다가 다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하고 장기 구속되셨습니다. 가석방 후에도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으시고, 다시 교도들에게 신사참배 거부를 설교하셨습니다.
1940년7월에 일제는 소위불경죄 및 치안유지법위반등의 좌목으로 실형을 언도하였으며, 주기철선생님께서는 옥고를 치르시다 1944년 4월 21일 옥중에서 순국하셨습니다.
정부에서는 그의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선생의 뜻과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별도의 전사실을 마련하여 관련자료와 사진을 11월한 달간 전시하는 한편, 순국선열유족회에서도 이 달의 독립운동가 학술 강연회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여러분도 함께 참여함이 어떨까요?
천안 독립기념관 : 041) 560-0221~6 독립문공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 02) 363-9750 순국선열유족회 : 02) 365-4388
3·1운동에 참여하고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전개하다 옥중 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