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이달의 전쟁영웅
Bryant E. Moore
1951년 1월 31일,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31일. 한국에서 미 육군사관학교 교장이었던 브라이언트 이. 무어 소장은 맥아더 사령부의 요청에 의해 미 제9군단장으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는 바로 작전에 참여하였는데요. 썬더볼트 작전에 참여하여 중공군 및 인민군의 대공세에 맞서 경기도 및 서울 남부 지역에 반격을 가하였습니다. 브라이언트 이. 무어 소장은 치열한 전투 속에서 늘 최전선에서 병사들과 함께하고자 했습니다. 무어 소장은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한 후 미8군이 중공군에 대해 실시한 최초의 적극적인 공세 작전인 킬러 작전에 다시 참가했습니다. 킬러 작전은 중공군의 4차 공세로 형성되었던 중동부 전선의 열세지역을 회복하고, 그 지역 안에 있는 적군을 포위하여 격멸하기 위한 작전으로 1951년 2월 21일 개시되었습니다.
이 작전에서 무어 소장의 제 9군단은 주요 공격 임무를 맡아 양평~횡성 선으로 곧바로 진격하기 시작했고, 무어 소장은 부하들을 진두지휘하며 최전선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월 24일, 뜻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정찰을 위해 탑승한 헬기가 여주 근처에 한강에 추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사고로 무어 소장은 전사하게 되었지만, 목격자에 의하면 그는 사고로 인한 헬기의 잔해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이 아닌, 부하들의 구출만을 걱정하다 숨졌다고 합니다.
그는 바로 작전에 참여하였는데요. 썬더볼트 작전에 참여하여 중공군 및 인민군의 대공세에 맞서 경기도 및 서울 남부 지역에 반격을 가하였습니다. 브라이언트 이. 무어 소장은 치열한 전투 속에서 늘 최전선에서 병사들과 함께하고자 했습니다. 무어 소장은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한 후 미8군이 중공군에 대해 실시한 최초의 적극적인 공세 작전인 킬러 작전에 다시 참가했습니다. 킬러 작전은 중공군의 4차 공세로 형성되었던 중동부 전선의 열세지역을 회복하고, 그 지역 안에 있는 적군을 포위하여 격멸하기 위한 작전으로 1951년 2월 21일 개시되었습니다.
이 작전에서 무어 소장의 제 9군단은 주요 공격 임무를 맡아 양평~횡성 선으로 곧바로 진격하기 시작했고, 무어 소장은 부하들을 진두지휘하며 최전선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월 24일, 뜻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정찰을 위해 탑승한 헬기가 여주 근처에 한강에 추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사고로 무어 소장은 전사하게 되었지만, 목격자에 의하면 그는 사고로 인한 헬기의 잔해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이 아닌, 부하들의 구출만을 걱정하다 숨졌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