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이달의 전쟁영웅
최득수
전투가 한창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던 1953년 6월 26일 강원도 양구 인근, 중공군은 야포와 박격포의 지원사격 속에 압도적인 병력을 투입해 아군의 전략적 요충지인 비석고지를 점령하였습니다.
전략적 요충지를 적에게 뺏긴 상황에서 최득수 이등상사가 배속되어 있는 국군 제7사단 8연대 2대대는 백병전까지 치르며 격렬한 반격을 시도하였으나 적 수류탄에 대대장까지 전사하는 등 피해를 입으며 반격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적은 수차례에 걸친 공격에도 좀처럼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 속에 우리 측은 1,300여 명에 달할 정도의 인명 손실을 얻고 말았습니다. 6월 30일 새벽 2시, 전우의 희생을 보다 못한 제8연대 2대대는 30명의 대대원으로 이루어진 특공대를 조직하여 최후의 결단을 실행하였습니다. 수많은 전우의 목숨을 앗아간 비석고지에 설치된 적의 기관총 진지에 이르자 특공대 제1조장인 최득수 이등상사는 곧바로 선두에 서서 돌진하였습니다.
적의 격렬한 포격에도 불구하고 얼마 후, 특공대는 적의 기관총을 파괴하였고, 그 신호탄을 받은 아군은 적을 공격하여 새벽 4시 30분 적의 진지를 완전히 점령하였습니다. 전투가 끝났을 때 특공대원 30명 중 살아남은 사람은 최득수 이등상사를 포함해 5명에 불과했다. 최득수 이승상사와 특공대원이 아니었다면 그날의 역사는 다르게 기록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전략적 요충지를 적에게 뺏긴 상황에서 최득수 이등상사가 배속되어 있는 국군 제7사단 8연대 2대대는 백병전까지 치르며 격렬한 반격을 시도하였으나 적 수류탄에 대대장까지 전사하는 등 피해를 입으며 반격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적은 수차례에 걸친 공격에도 좀처럼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 속에 우리 측은 1,300여 명에 달할 정도의 인명 손실을 얻고 말았습니다. 6월 30일 새벽 2시, 전우의 희생을 보다 못한 제8연대 2대대는 30명의 대대원으로 이루어진 특공대를 조직하여 최후의 결단을 실행하였습니다. 수많은 전우의 목숨을 앗아간 비석고지에 설치된 적의 기관총 진지에 이르자 특공대 제1조장인 최득수 이등상사는 곧바로 선두에 서서 돌진하였습니다.
적의 격렬한 포격에도 불구하고 얼마 후, 특공대는 적의 기관총을 파괴하였고, 그 신호탄을 받은 아군은 적을 공격하여 새벽 4시 30분 적의 진지를 완전히 점령하였습니다. 전투가 끝났을 때 특공대원 30명 중 살아남은 사람은 최득수 이등상사를 포함해 5명에 불과했다. 최득수 이승상사와 특공대원이 아니었다면 그날의 역사는 다르게 기록되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