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이달의 전쟁영웅
이정숙
이정숙 여성유격대원은 구월산의 여장군으로 많이 알려진 전쟁영웅입니다. 그녀의 활약상은 최무룡 감독의 영화 피어린 구월산 - 1965과 고우영 화백의 만화 구월산 유격대를 통해서 생생하게 그려진 바 있습니다.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했던 구월산 유격부대, 그 중에서도 돋보였던 이정숙 여성유격대원을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이정숙은 1922년 2월에 함흥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6·25전쟁 직전에 공산군 손에 부모와 남편을 잃고 말았는데요. 그녀 자신도 복역을 하다가 탈출에 성공하여, 1950년 10월 황해도 안악군에서 서하무장대를 결성하여 무장대원 70여명과 농민들을 진두지휘하며 북한분과의 싸워나갔습니다.
구월산의 유격부대는 일명 동키 제2부대로도 불렸는데요! 1950년 10월 중순,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과 이도면 등의 반공 청년들로 조직된 연풍부대를 모태로 하여, 육군본부 정보국 소속의 김종벽 대위가 반공청년들의 자생적 무장조직을 규합하여 1950년 12월 7일에 창설한 유격대입니다.
처음에는 약 150여 명으로 시작하였지만 이후엔 많은 피난민들이 가담하여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났는데요. 이정숙은 구월산 유격부대에 합류한 뒤 김종벽 대위의 보좌관 직책을 맡아 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1951년 1월 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하여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여 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9명을 구출하는 큰 전공을 세웠는데요. 이 외에도 공산군 습격을 위한 월사리 반도 상륙작전, 어양리 지역 상륙 작전 등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러한 활약으로 인해 이정숙 요원은 구월산의 여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요. 그 공을 인정받아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고, 1960년대 중학교 교과서에 그 활약상이 수록되기도 했습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이달의 6·25전쟁영웅선정과 함께 고인에게 대통령 명의의 국가유공자 증서를 추서할 예정입니다. 남다른 용기와 의지를 가지고 조국을 위해 싸웠던 2월의 6·25전쟁영웅 여장부 이정숙 유격대원을 기억해주세요!
구월산의 여장군 전우를 구하다.
구월산의 유격부대는 일명 동키 제2부대로도 불렸는데요! 1950년 10월 중순,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과 이도면 등의 반공 청년들로 조직된 연풍부대를 모태로 하여, 육군본부 정보국 소속의 김종벽 대위가 반공청년들의 자생적 무장조직을 규합하여 1950년 12월 7일에 창설한 유격대입니다.
처음에는 약 150여 명으로 시작하였지만 이후엔 많은 피난민들이 가담하여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났는데요. 이정숙은 구월산 유격부대에 합류한 뒤 김종벽 대위의 보좌관 직책을 맡아 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1951년 1월 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하여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여 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9명을 구출하는 큰 전공을 세웠는데요. 이 외에도 공산군 습격을 위한 월사리 반도 상륙작전, 어양리 지역 상륙 작전 등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러한 활약으로 인해 이정숙 요원은 구월산의 여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요. 그 공을 인정받아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고, 1960년대 중학교 교과서에 그 활약상이 수록되기도 했습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이달의 6·25전쟁영웅선정과 함께 고인에게 대통령 명의의 국가유공자 증서를 추서할 예정입니다. 남다른 용기와 의지를 가지고 조국을 위해 싸웠던 2월의 6·25전쟁영웅 여장부 이정숙 유격대원을 기억해주세요!
구월산의 여장군 전우를 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