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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이달의 인물

오기호, 이기, 홍필주
을사늑약(1905년)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고 국권 상실의 위기가 심화되자, 이에 대한 저항은 상소나 자결을 넘어 직접적인 행동인 의열투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을사오적 처단 계획

배경: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고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면서 국권이 박탈되자, 이에 대한 국민적 저항(상소, 자결, 의병 봉기)이 일어났습니다.
전개: 외교적 수단으로 국권 회복을 모색하던 나철, 오기호, 이기 등은 을사늑약 체결 이후 직접 행동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1907년 1월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고 을사오적 처단을 계획했습니다.

결과: 여러 차례 거사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의거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평리원(平理院)에 자진 출두했습니다. 이들은 '내란 예비·음모'로 유배형을 선고받았으나, 이는 외교적 항쟁에서 의열투쟁으로 전환되는 당시 항일운동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주요 인물의 역할

오기호 (吳基鎬):
외교 활동의 한계를 절감한 후 자신회 조직 및 을사오적 처단 계획을 주도하며 자금 확보와 실무를 관장했습니다. 석방 후에는 호남학회에서 계몽운동을 전개하고 대종교 중광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했습니다.

이기 (李沂):
유학자 출신으로, 을사늑약 저지를 위한 외교활동 후 의열투쟁으로 전환했습니다. 자신회 조직에 참여하여 「자신회취지서」를 작성하며 의거의 이념과 논리를 정립하는 역할을 맡았고, 이후 호남학회에서 교육을 통한 계몽운동을 전개하고 대종교 중광에 참여했습니다.

홍필주 (洪弼周):
한일의정서 반대 상소와 황무지개척권 반대운동에 참여했으며, 을사늑약 체결 후 대한자강회를 조직하여 계몽운동에 힘썼습니다. 자신회 조직에 참여하며 을사오적 처단을 계획했고, 이후 대한협회 창립과 강제합병반대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며 항일운동의 전선을 유지했습니다.

을사오적 처단 계획은 비록 성공하지 못했으나, 국권 상실의 책임을 묻고 민족 해방을 위한 실천을 강조함으로써 이후 구국운동의 방향 전환과 정신적 기반 재건(대종교 중광 등)에 역사적 의의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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