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양근환
5월의 독립운동가 친일거두를 응징한 대한 청년
양근환
3.1운동 때 만세시위에 참여한 후, 일본에 대항할 힘을 기르기 위해 도쿄로 유학하여 니혼 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하였다. 국수장사, 신문배달 등으로 학비를 벌어 공부하다 학자금이 부족하여 중도에 포기하였으나, 돈을 벌면 주위의 고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밥을 먹이는 일이 많았다. 1921년 선생은 민원식이 참정권 청원운동을 벌이기 위해 도쿄역호텔에 머물고있다는 소식을 그를 찾아가 민족 반역자라고 호되게 야단친 후 처단하였다.
민원식을 처단한 후 상해로 망명하려 했으나 쫓아온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체포된 후 겁내는 기색이 없이 행동하며 법정에서도 당당한 자세로 옳은 일을 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2년의 감옥생활 후 40세가 되어 석방되었다. 선생의 의열투쟁은 일제의 앞잡이들에게 경종을 울린 사건으로 이후 재일 유학생들이 보다 조직적인 의열투장을 전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3·1운동 이후 국민협회를 세우고 친일파 민원식을 민족의 반역자로 차단
양근환
3.1운동 때 만세시위에 참여한 후, 일본에 대항할 힘을 기르기 위해 도쿄로 유학하여 니혼 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하였다. 국수장사, 신문배달 등으로 학비를 벌어 공부하다 학자금이 부족하여 중도에 포기하였으나, 돈을 벌면 주위의 고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밥을 먹이는 일이 많았다. 1921년 선생은 민원식이 참정권 청원운동을 벌이기 위해 도쿄역호텔에 머물고있다는 소식을 그를 찾아가 민족 반역자라고 호되게 야단친 후 처단하였다.
민원식을 처단한 후 상해로 망명하려 했으나 쫓아온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체포된 후 겁내는 기색이 없이 행동하며 법정에서도 당당한 자세로 옳은 일을 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2년의 감옥생활 후 40세가 되어 석방되었다. 선생의 의열투쟁은 일제의 앞잡이들에게 경종을 울린 사건으로 이후 재일 유학생들이 보다 조직적인 의열투장을 전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3·1운동 이후 국민협회를 세우고 친일파 민원식을 민족의 반역자로 차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