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박자혜
7월의 독립운동가 민족의 상처를 보듬은 간우회 지도자 박자혜
간호사로 근무하던 박자혜 선생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간우회를 조직했습니다. 간우회 회원들과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병원에 근무할 수 없어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신채호 선생과 결혼 후 국내로 들어와 독립운동가와의 연락을 이어주던 여사는 1926년 12월,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회사 폭파 의거시 사전에 자리를 안내하는 등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남편의 옥바라지와 자녀교육은 물론 생계를 모두 책임지던 여사는 일제의 감시와 폭력에 시달리다 신채호 선생이 순국한 후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병고로 영면 하였습니다. 민족의 상처를 보듬던 당신의 손길이 그립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간우회를 조직하여 만세운동에 참여
간호사로 근무하던 박자혜 선생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간우회를 조직했습니다. 간우회 회원들과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병원에 근무할 수 없어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신채호 선생과 결혼 후 국내로 들어와 독립운동가와의 연락을 이어주던 여사는 1926년 12월,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회사 폭파 의거시 사전에 자리를 안내하는 등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남편의 옥바라지와 자녀교육은 물론 생계를 모두 책임지던 여사는 일제의 감시와 폭력에 시달리다 신채호 선생이 순국한 후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병고로 영면 하였습니다. 민족의 상처를 보듬던 당신의 손길이 그립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간우회를 조직하여 만세운동에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