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박찬익
8월의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교의 제일선에 서다 박찬익
1910년 공업전습소 졸업 후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만주로 망명하여 경학사와 신흥강습소 설립에 참여하고 1919년 2월 대한독립의군부 창설에도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1일, 대종교 교주 김교헌을 비롯, 김동삼, 김좌진, 박은식 등 39명이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였다. 해방 후 주화대표단 단장으로 임시정부와 동포들의 안전한 환국을 돕는 등 교포사회를 안정시키는 데 헌신하였다. 1932년 윤봉길 의거 이후 임시정부의 안전한 이동과 1940년 광복군 창설에 이바지하였으며, 김구 선생과 국민당 장개석과의 회담을 성사 시키는 등 중국정부와의 외교 교섭 최일선에서 활동하였다. 1948년 초 김구 선생이 평양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했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1949년 3월 9일 타계하셨다.
1919년 2월 대학독립의군부 창설에 기여. 1919년 3월 대한독립선언 발표
1910년 공업전습소 졸업 후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만주로 망명하여 경학사와 신흥강습소 설립에 참여하고 1919년 2월 대한독립의군부 창설에도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1일, 대종교 교주 김교헌을 비롯, 김동삼, 김좌진, 박은식 등 39명이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였다. 해방 후 주화대표단 단장으로 임시정부와 동포들의 안전한 환국을 돕는 등 교포사회를 안정시키는 데 헌신하였다. 1932년 윤봉길 의거 이후 임시정부의 안전한 이동과 1940년 광복군 창설에 이바지하였으며, 김구 선생과 국민당 장개석과의 회담을 성사 시키는 등 중국정부와의 외교 교섭 최일선에서 활동하였다. 1948년 초 김구 선생이 평양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했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1949년 3월 9일 타계하셨다.
1919년 2월 대학독립의군부 창설에 기여. 1919년 3월 대한독립선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