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김원식
6월의 독립운동가 김원식 의병장
김원식선생은 1907년 7월 이후에 강원도 북부에서 군사를 모아 활동을 전개한 강원도의병장이다. 일제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친일파들을 없에고 우리나라의 자주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반일활동을 전개한 순국선열로서 올해는 선생이 순국하신지 100 주년이 되는 해로 선생의 공훈을 기리고자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1904년 2일 러일전쟁 이후 일제는 한국에 대한 침략정책을 본격화하였다. 이어 1905년 11일의 을사늑약과 1907년 7 월의 정미조약-군대해산을 통해 한국의 국권을 탈취하였다. 이로써 한국은 일제에게 내정과 외교상의 모든 권한을 해앗기고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이러한 민족적 국가적 위기상황 속에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치열하게 항일활동을 펼쳤다.
정미조약-군대해산 이후에 강원도 북부의 산악지대에서도 의병이 크게 일어났다. 이를 항일의병들은 1907년 9~10월 2달간 춘천관찰부를 포위하고 거센 공격을 필치 강원도의 의병피해자가 전국에서 수위를 차지할 정도로 활발하게 의병활동을 필쳤다. 강원도 각지에서 의병활동이 치일하게 벌어지던 시기에 선생은 강원도 춘천 이북의 황강 · 화천 - 양구 - 금성 인제 등재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선생은 화승총과 서양총으로 무장한 20여명의 소부대를 거느리고 일본군수비대를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강원도 특부의 험준한 산악지형을 활용하여 주로 야간과 새벽에 기습전을 펼쳐 일제에게 타격을 가했으며, 출청도 제천에서 일어나 강원 북부의 금강산지역까지 북상한 이강년의병과 선생의 부대와 힘을 합해 연합 군사활동을 벌여 큰 전과를 올렸다. 이로 말미암아 선생은 일제로부터 주목 받는 인물이 되었다. 당시 선생의 부대는 인근의 일본군수비대를 공격하고, 헌병주재소를 파괴하고, 전신선을 자르고, 세금을 탈취하고, 군수물자를 빼앗고, 친일 관리와 부호를 처단함으로써 일제의 한국지배에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의병운동이 차츰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으나, 강원 북부에서만 소규모 부대의 활동이 더욱 강해지자 일제는 대대적인 의병토벌작전을 벌였으며, 이러한 토벌작전으로 인하여 김원식의병장은 1908년 6월 26일 강원도 금성군 동쪽의 과반리에서 일본군 금성수비대와 전투를 벌이다가 장일하게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혼을 기리에 1995년 간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5월은 호국 보존의 달입니다. 호국 보관또으| 달을 맞이하여 국
동북군사위원으로 활동 중 체포 지린성에서 순국
김원식선생은 1907년 7월 이후에 강원도 북부에서 군사를 모아 활동을 전개한 강원도의병장이다. 일제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친일파들을 없에고 우리나라의 자주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반일활동을 전개한 순국선열로서 올해는 선생이 순국하신지 100 주년이 되는 해로 선생의 공훈을 기리고자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1904년 2일 러일전쟁 이후 일제는 한국에 대한 침략정책을 본격화하였다. 이어 1905년 11일의 을사늑약과 1907년 7 월의 정미조약-군대해산을 통해 한국의 국권을 탈취하였다. 이로써 한국은 일제에게 내정과 외교상의 모든 권한을 해앗기고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이러한 민족적 국가적 위기상황 속에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치열하게 항일활동을 펼쳤다.
정미조약-군대해산 이후에 강원도 북부의 산악지대에서도 의병이 크게 일어났다. 이를 항일의병들은 1907년 9~10월 2달간 춘천관찰부를 포위하고 거센 공격을 필치 강원도의 의병피해자가 전국에서 수위를 차지할 정도로 활발하게 의병활동을 필쳤다. 강원도 각지에서 의병활동이 치일하게 벌어지던 시기에 선생은 강원도 춘천 이북의 황강 · 화천 - 양구 - 금성 인제 등재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선생은 화승총과 서양총으로 무장한 20여명의 소부대를 거느리고 일본군수비대를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강원도 특부의 험준한 산악지형을 활용하여 주로 야간과 새벽에 기습전을 펼쳐 일제에게 타격을 가했으며, 출청도 제천에서 일어나 강원 북부의 금강산지역까지 북상한 이강년의병과 선생의 부대와 힘을 합해 연합 군사활동을 벌여 큰 전과를 올렸다. 이로 말미암아 선생은 일제로부터 주목 받는 인물이 되었다. 당시 선생의 부대는 인근의 일본군수비대를 공격하고, 헌병주재소를 파괴하고, 전신선을 자르고, 세금을 탈취하고, 군수물자를 빼앗고, 친일 관리와 부호를 처단함으로써 일제의 한국지배에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의병운동이 차츰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으나, 강원 북부에서만 소규모 부대의 활동이 더욱 강해지자 일제는 대대적인 의병토벌작전을 벌였으며, 이러한 토벌작전으로 인하여 김원식의병장은 1908년 6월 26일 강원도 금성군 동쪽의 과반리에서 일본군 금성수비대와 전투를 벌이다가 장일하게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혼을 기리에 1995년 간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5월은 호국 보존의 달입니다. 호국 보관또으| 달을 맞이하여 국
동북군사위원으로 활동 중 체포 지린성에서 순국